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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 정림사지오층석탑·궁남지... 검소한 백제 미학 오롯이 | 관리자 | 1,637 | 2011.01.10 |
부여는 크지 않다. 화려하지 않지만 은근한 멋들이 넓지않은 부여 곳곳에 숨어있다. 정림사지가 자리한 곳은 부여읍 중심. 이름 그대로 정림사란절이 있던 자리다. 지금 절터엔 석탑과 복원된 강당건물, 연못, 그리고 정림사지박물관이 들어서있다. 부여에 들렀을 때 이곳을 빼먹으면 안되는 것이 바로 정림사지가 품고 있는 오층석탑(국보 제9호)때문이다. ![]() 백제의 우아한 아름다움의 표본이다. 훤칠한 키에 늘씬한 몸매를 지닌 석탑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아침 안개 속의 정림사탑은 엘리건트하며 노블하며 그레이스한 우아미의 화신이다'라고 적고 있다. 그는 '장림사탑이야말로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다는 백제 미학의 상징적 유물'이라고 덧붙였다. 이탑은 국내 모든 석탑들의 어머니격이다. 나무탑을 흉내내던 이전의 돌탑을 벗어나 돌의 성질을 그대로 살려나 이뤄낸 돌탑의 전형이다. 허허로운 절터에 홀로 솟은 탑신. 탑에 바싹 다가가 올려다 본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지붕돌들이 층층이 겹쳐진다. 그 끝자락에서 슬쩍 치켜오른 지붕돌. 탑이 하늘을 들어올리는 느낌이다. 오층석탑 뒤 복원된 강당 안에는 키 큰 석불이 모셔져 있다.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보물 108호)이다. 돌로 된 중절모를 쓴 듯한 멋쟁이 석불이다. 탑은 백제때 지어졌지만 석불은 고려때 것이다. 고려때 중창불사하면서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석불의 머리와 모자는 후대에 다시 올려놓은 것이라 한다. 부여읍의 가장 남쪽에 있는 궁남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이다. 신라 경주의 안압지보다 40년이 빠르다. 서동요의 주인공 무왕이 백제 왕실의 정원으로 조성한 연못이다. '백제 무왕 35년(634년)에 궁의 남쪽에 못을 파고 물을 20리 떨어진 곳에서 끌어와 인공섬을 만들고 주변에 버드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한여름이면 홍연,백련,수련 등이 가득했을 궁남지는 지금 적막하기만 한 하얀 눈밭이다. 이따금 무리지어 날갯짓하는 철새들만 노닐고 있다. 지난해 여름 부여에선 세계대백제전이라는 커다란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때 문을 연 곳이 백제문화단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백제의 왕궁을 복원해 놓았다. 사비궁, 능사, 고분공원, 생활문화마을, 위례성 등으로 구분돼 있다. 입구의 백제역사문화관은 백제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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